코타키나발루 #8 - 떠나는 날 시내구경
드디어 코타키나발루 여행기 마지막이네요 ^^
여행기를 쭉 정리하다보니 여행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나서 너무 좋네요
떠나는 날 저녁에는 공항에 가기전에 이곳저곳 들려서 구경도 하고 마사지도 받고 그랬습니다.
사실 놀기도 얼마나 피곤하던지 ㅎㅎ
여기는 사바주의 관문인 코타키나발루의 Jesselton 항입니다.
Jesselton 항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잠깐 코타키나발루의 역사 좀 보고 갈까요?
여기가 바로 그 Jesselton 항구입니다.
지금은 관광지 및 여객선 터미널로 사용되고 있구요.
지나가면서 보니 미니 축구장도 있더군요
코타키나발루에서 유명한 것들을 그려놓은 그림샾입니다.
원숭이 밖에 모르겠네요 ㅎㅎ
사바주청사도 갔었는데 멀리서 지나가면서 보기만 해서 사진이 없네요
구글 검색의 이미지에서 가져온 사진이라도 보여드립니다.
회전식 레스토랑도 있다는데 전망이 정말 멋질 거 같습니다 ^^
다음에 혹시 가게된다면 예약해서 꼭 가보고 싶더군요
아래는 주립 이슬람 사원인데 세계 3대 사원중에 하나랍니다.
정말 규모가 어마어마 하더군요
저희가 갔을 때 예배중이여서 경전을 읽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
일행들은 주차장에서 조용히 사진만 찍고 나왔습니다.
시내구경 하면서 말레이시아 법,생활 관련 재미난 얘기를 몇가지 들었는데
그 중에 2가지만 소개하면서 코타키나발루 여행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라면
가이드의 집안일을 해주는 현지인이 있었는데
어느날 여행객들이 주고간 라면을 집에 가져갔답니다.
라면을 먹으면서 현지인보고 하나 먹으라고 했더니
이슬람 국가라서 동물성 기름이 들어간 라면을 먹으면 법에 걸린다고 안 먹는다고 했다는군요
그랬는데
가이드가 일을 좀 일찍 마치고 집에 들어섰는데
집안에서 후루룩 후루룩 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현지인이 라면을 몰래 먹고 있었다는
딱 걸린 현지인이 제발 신고하지 말아달라고 그렇게 싹싹 빌었다고 하네요
종교법을 위반하면 종교경찰에 의해 잡혀간다고 합니다.
일부다처제
말레이시아는 일부다처제 국가이긴 한데
부인을 여럿 두기위해서는 꼭 지켜야 할 불문율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부인에게 똑같이 해주어야 한다!!!
첫째 부인에게 집을 사줬으면 둘째 부인에게도 사줘야 되는 겁니다.
만일 이걸 지키지 못할 경우 이혼 사유로 인정 된다고 하네요
웬만큼 부유하지 않고서는 한 명의 부인 밖에 두지 못할 것 같네요 ㅎㅎ
지금까지 코타키나발루 여행기 였습니다.
읽어주시고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음에는 사진 정리되는대로 유럽 허니문 여행 포스팅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행기를 쭉 정리하다보니 여행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나서 너무 좋네요
떠나는 날 저녁에는 공항에 가기전에 이곳저곳 들려서 구경도 하고 마사지도 받고 그랬습니다.
사실 놀기도 얼마나 피곤하던지 ㅎㅎ
여기는 사바주의 관문인 코타키나발루의 Jesselton 항입니다.
Jesselton 항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잠깐 코타키나발루의 역사 좀 보고 갈까요?
코타 키나발루는 William C. Cowie가 책임자로 있던 영국의 북 보르네오 특허회사 (the British North
Borneo Chartered Company)에 의해 1881년 무역항으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당시 건설되었던 코타 키나발루는
현재의 KK 본토가 아닌, 지금의 시가지의 반대쪽인 오늘날 필리핀인들의 판자촌인 Gaya섬이었다. 북 보르네오 회사에 대항하여
일련의 유격전을 펼치던 저항군 지도자 Mat Salleh가 1897년 7월 9일 Gaya섬에 상륙하였다. 그의 부대는 부락을
약탈하였고 영국은 가야 지구(Gaya Township)를 포기하였다.
그로부터 2년 후 유럽인들은 또다른 township을 세웠는데 이번에는 Gaya섬 반대편의 Bajau 水上 마을에 인접한 오늘날의 KK 본토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그 촌락 (kampong)은 여러 해 동안 해적들에 의해 되풀이해서 횃불이 밝혀졌었기 때문에 'Api-Api' (불이야! 불이야!) 라고 불리었다. 북 보르네오 회사는 이러한 불길한 이름 대신에 회사의 책임자의 한 명이었던 Charles Jessel 경의 이름을 따서 그곳을 Jesselton이라고 명명하였다. 이전에 Sulu의 술탄을 위해 총포와 화약을 밀수입하던 William C. Cowie가 1894년에 북보르네오 회사의 총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보르네오 횡단 철도를 원했는데 이를 위해 Gaya섬 반대편의 Tanjung Aru의 바로 북쪽의 좁은 땅을 종착역으로 선정하였다. 1905년 92km의 협궤철로에 의해 Jesselton과 Beaufort가 연결되었다.
1942년 일본군이 보르네오를 침공하였을 때 Jesselton 항은 연합군에 의해 중요한 전략 요충지로 부각되었다. Jesselton은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쯤 Kudat와 Sandakan과 함께 북보르네오의 행정 중심지로 성장하여 도시 전체가 완전히 새로 개조되었다. 1967년 9월 Jesselton은 키나발루산의 이름을 따서 코타 키나발루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보통 줄여서 KK라고 불리우고 있다.
여기가 바로 그 Jesselton 항구입니다.
지금은 관광지 및 여객선 터미널로 사용되고 있구요.
지나가면서 보니 미니 축구장도 있더군요
코타키나발루에서 유명한 것들을 그려놓은 그림샾입니다.
원숭이 밖에 모르겠네요 ㅎㅎ
사바주청사도 갔었는데 멀리서 지나가면서 보기만 해서 사진이 없네요
구글 검색의 이미지에서 가져온 사진이라도 보여드립니다.
회전식 레스토랑도 있다는데 전망이 정말 멋질 거 같습니다 ^^
다음에 혹시 가게된다면 예약해서 꼭 가보고 싶더군요
아래는 주립 이슬람 사원인데 세계 3대 사원중에 하나랍니다.
정말 규모가 어마어마 하더군요
저희가 갔을 때 예배중이여서 경전을 읽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
일행들은 주차장에서 조용히 사진만 찍고 나왔습니다.
시내구경 하면서 말레이시아 법,생활 관련 재미난 얘기를 몇가지 들었는데
그 중에 2가지만 소개하면서 코타키나발루 여행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라면
가이드의 집안일을 해주는 현지인이 있었는데
어느날 여행객들이 주고간 라면을 집에 가져갔답니다.
라면을 먹으면서 현지인보고 하나 먹으라고 했더니
이슬람 국가라서 동물성 기름이 들어간 라면을 먹으면 법에 걸린다고 안 먹는다고 했다는군요
그랬는데
가이드가 일을 좀 일찍 마치고 집에 들어섰는데
집안에서 후루룩 후루룩 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현지인이 라면을 몰래 먹고 있었다는
딱 걸린 현지인이 제발 신고하지 말아달라고 그렇게 싹싹 빌었다고 하네요
종교법을 위반하면 종교경찰에 의해 잡혀간다고 합니다.
일부다처제
말레이시아는 일부다처제 국가이긴 한데
부인을 여럿 두기위해서는 꼭 지켜야 할 불문율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부인에게 똑같이 해주어야 한다!!!
첫째 부인에게 집을 사줬으면 둘째 부인에게도 사줘야 되는 겁니다.
만일 이걸 지키지 못할 경우 이혼 사유로 인정 된다고 하네요
웬만큼 부유하지 않고서는 한 명의 부인 밖에 두지 못할 것 같네요 ㅎㅎ
지금까지 코타키나발루 여행기 였습니다.
읽어주시고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음에는 사진 정리되는대로 유럽 허니문 여행 포스팅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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